노아&어린양
오늘의 본문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11:7)
■ 주제 설정 - 노아의 믿음 좋음 이전에 하나님은 그에게 믿을 만한 은혜를 주셨다.
■ 말씀 나누기
1. 악한 세상 속에서도 노아는 어떤 은총을 입었는가?(창6:8)
8절이 나오기 바로 전 구절에는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하심이 나온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성경(KJV)에는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로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은혜를 봤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문맥상 하나님의 눈에 비친 눈물을 본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할 것을 내다보시는 하나님은 노아 방주의 크기(창6:15)를 알려주신다. 우리는 방주의 크기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인구를 추정해 볼 때(몇 억에서 수십억으로 추정됨)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주의 크키로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태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모두가 탈 수 있게 크게 만들도록 주문하지 않으신 것일까?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호소를 거절하고 수장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홍수 전에 하나님의 눈에서 먼저 흐른 안타까운 눈물을 노아가 본 것이리라(창6:8).
노아 600년 2월 17일에 지하의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창7:11)이 열리기 약 1,000 년 전에 하나님의 눈물은 이미 므두셀라(너 죽으면 심판온다는 이름의 의미)의 때에 터지고 흘러 내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다투지 않겠다는 뜻) 아니하리”(창6:3)라고 표현 하실 만큼 사람들은 지독히도 하나님의 속을 아프게 한다. 노아도 보았던 하나님의 어쩔 줄 몰라 속절없이 우시는 모습은 2,300년 지난 후 사람으로 오신 어린양 예수님에게 재현되었다. 그 옛날 떠올리기 싫은 노아시절처럼 여전히 하나님을 거절하는 인류들을 향해 주님은 드러내 놓고 우시고 만다(마23:37). 아~ 우리가 뭐길래 하나님도 우리를 어떻게 못하신단 말인가!
2 노아 홍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떠셨는가?(창6:6)
단어는 창3:16의 범죄 후 얻은 “수고”나 “고통”과 뿌리가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압살롬이 죽자 다윗이 고통스럽게 슬퍼할 때 쓰인 단어이기도 하다(삼하19:2). 이러므로 아차브라는 단어는 홍수로 인해 죽은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을 충분히 드러내주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는 홍수를 통해 더욱 깊어지게 된다. 범죄 후 더해진 고통과 수고를 안타까이 보시던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수고로이 일하는”(창5:29 고통스레: 이차본) 인생들을 홍수로 잠재우신다. 그리고 반역한 자식이지만 사랑스런 압살롬을 위해 통곡했던 다윗처럼 홍수로 죽어갈 자식들 때문에 우시는(아차브:근심) 하나님의 모습을 ‘아차브’(근심, 수고, 고통, 탄식)란 단어가 잘 표현해주고 있다.
전지구적 격변인 홍수 사건에 묻혀 무심코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홍수 후 제일 먼저 번제의 향기를 흠향(창8:21)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방신들처럼 짐승과 사람의 피에 굶주린 신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독생자 어린양을 제물로 삼아 흠향하시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인 사람들이 받을 진노를 어린양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이셨다. 이 흠향하시는 모습에서 장차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실 어린양 예수님을 받으시는(흠향) 하나님의 심정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 가슴이 찡해온다.
그리고나서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는 마치 매를 든 아빠가 저녁에 자는 아이의 종아리를 만지며 후회하며 회초리를 들녘에 던져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무지개는 사랑하시고 후회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아린 마음이 7색으로 표현된 회초리(케쉐트: 전쟁용 활, Rain+bow 비처럼 내리는 무기)이다. 이젠 싸우지 않으시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 후 계절이 바뀌고 추위도 오고 비도 오게 된다(창8:22). 그래서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우리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감성적이 되는 건 하나님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오래된 아픔이 새어나와 피조물들에게 전이된 것이 아닐까...
■ 은혜 나누기
1. 하나님의 품성에 관한 오해를 푸는 기별을 전할 때 노아홍수를 어떻게 전하면 좋겠는가?
2.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창6:9)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3. 가족만 타게 된 방주에 비가 오자 사람들이 몰려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들겼을 때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 명상할 말씀
"후대의 자손들이 하늘에 걸쳐 있는 영광스러운 아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에, 그들의 부모들이 홍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다시는 세상을 물로써 멸망시키시지 않겠다는 보증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둥근 무지개를 만드셔서 구름 속에 두셨다는 것을 저들에게 이야기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였다. 이리하여 이것은 대대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를 굳게 할 것이었다... 사람이 그의 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때 구주께서는 그를 위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시며, 회개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징표로써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와 보좌 주위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와 자신의 머리 위에 둘린 무지개를 가리키신다.”(pp, 108).
노아는 사람들을 두고 방주 문을 못 닫았다.
하나님께서 굳이 닫지 않으셨으면 방주는 침몰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은 누구라도 들어오길 바라며 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쏙 빼 닮았다.
세상에, 우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어딨을까?